주민등록번호도 변경할 수 있는 시대

주민등록법 개정안 국회 통과… 개인정보 수집·관리 더 철저히 감독해야

 


내년 5월부터 주민등록번호를 변경할 수 있게 됐다. 주민등록법 개정안이 지난 5월19일 국회를 통과했다. 변경할만한 사유가 있으면 신청해 절차에 따라 변경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주민등록번호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든 예외없이 부여받는 자신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인식표다. 예전에는 주민등록증과 번호가 없으면 간첩이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으니 격세지감을 느낀다.

 

 

 

지금도 주민등록번호가 적힌 주민등록증은 언제나 휴대하고 다닌다. 그만큼 일생생활을 지배하는 신분증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주목할 대목은 주민등록번호다. 한 번 부여된 주민등록번호는 오류와 정정 등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변경할 수 없었다. 본인의 정체성이 부여된 번호라는 인식이 컸던 탓이 아닐까.

 

그랬던 것이 개인정보가 유출되거나 불법적으로 거래되면서 피해가 확산되는 등 국민 불안이 커지자 주민등록번호 변경의 필요성도 대두되기 시작했다. 지난 2014년 1월, 카드 3사가 1억만 건의 주민번호와 신상정보를 유출하면서 개인정보 보호 대책이 강구돼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주민등록번호 변경이 급물살을 탄 것은 지난해 말 ‘주민등록번호 변경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지 않은 주민등록법 조항은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헌재는 ‘주민등록번호 변경은 일정한 요건을 구비한 경우 객관성과 공정성을 갖춘 기관심사를 거쳐 변경하도록 허용할 필요가 있다’고 결정했다. 주민번호 유출에 따른 피해자들의 입장을 십분 반영한 결과이다.

 

지난 5월19일 국회를 통과한 주민등록법 개정안에 따르면, 주민번호 유출로 생명·신체·재산·성폭력 등 피해 또는 피해가 우려되는 사람은 주민등록지 단체장에게 번호 변경을 신청할 수 있다. 해당 지자체장은 행정자치부에 설치된 주민등록변경위원회 심의를 거쳐 번호를 변경하게 된다.

 

문제의 주민등록번호를 변경하게 되면 금융거래 등 많은 분야에서 변화가 예상된다. 피해자 구제 등 국민의 권익이 보호되고 유출에 따른 피해도 상당 부분 줄어들 전망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주민번호를 변경할 수 있는 길을 터주더라도 주민등록번호 유출 등 피해를 근본적으로 막을 수 없다는 견해도 제기되고 있다.

 

경실련 등 시민단체들은 ‘지금의 주민등록번호는 생년월일·성별·지역 등 개인의 고유정보가 드러나 있어 변경을 통해서도 이런 번호 체계를 유지하는 이상 개인정보 유출에 따른 피해를 막을 수 없다’며 주민등록법 개정안에 반대하고 있다. 지금의 주민등록번호 대신 ‘제한적, 목적별 임의번호’ 방식의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이런 주장도 일리는 있지만, 주민번호를 대체할 새로운 제도의 검토는 폭넓은 국민적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약 50년간 사용해온 주민등록번호와 체계를 바꾸고 새로운 임의번호제를 도입하는 것은 자칫 사회 혼란을 부를 수도 있다.

 

정부도 기존의 주민번호 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은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든다며 반대하는 입장이다. 시스템을 바꾸기보다 제도상 미비점을 보완하고 개선해 개인정보 유출에 따른 피해자를 일정한 요건과 절차를 통해 선별 구제하는 것이 좀 더 합리적인 방법이라는 생각이다.

 

이와 같이 주민등록번호를 둘러싼 논란의 핵심은 크게 두 가지로 집약된다. 위헌성 문제와 피해 예방 대책이다. 변경의 근거를 마련하지 못한 위헌성은 헌재 결정으로 어느 정도 해소됐다. 피해 예방은 개인정보 유출을 최대한 막고 그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관건이다.  

 

최근 개인정보 처리와 관련해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하는 경향이 많이 줄긴 했지만 여전히 남발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주민등록번호는 제시하지 않으면 가입과 혜택을 원천적으로 막는 시스템도 많이 접할 수 있다. 문제는 이렇게 모아진 개인정보들이 무분별하게 유출 또는 탈취되고 있다는 것이다.

 

주민등록번호 변경은 개인정보 유출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이다. 그렇다면 여기에 더해 주민등록번호 수집 허용을 최대한 억제하고 이렇게 모아진 개인정보를 철저히 관리하도록 하는 데 더욱 강력한 제도적 조치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개방과 공유를 미덕으로 삼는 이 시대에 개인정보만큼 중요하게 다뤄야 할 정보가 또 어디 있겠나. 이번 주민등록번호 변경 법안 통과를 계기로 개인정보 수집 및 관리에 대한 책임을 더욱 무겁게 하고 이를 어길 경우 엄하게 다스리는 법치를 바로 세울 필요가 있다. 더불어 개인정보는 당연히 보호해야 하는 것이라는 사회적 공감대 형성도 하루속히 이뤄져야 할 것이다. 출처 정책브리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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