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료제도, 대항해시대를 열다

 

향료 제도는 인도네시아 동부 술라웨시 섬과 뉴기 섬 사이에 있는 말라카 제도를 일컫습니다. 향료(향신료)는 후추, 계피, 정향, 육두구 등 육류가 부패하지 않도록 저장하거나 맛을 낼 때 사용하는 재료로 15세기에는 인도나 말라카 제도 등에서만 생산됐습니다. 지금은 식탁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중세 유럽, 후추나 계피 같은 향신료는 귀족이나 소비할 수 있는 귀하디 귀한 것이었습니다. 

 

향료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늘자 중세 유럽 국가들은 향료를 찾아 나섰습니다. 15세기 후반 유럽 국가들의 대항해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지중해 교역의 중심 베네치아>

 

물론 당시에도 유럽과 아시아는 교역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거의 모든 교역을 아탈리아 베네치아 상인들이 독점하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귀한 향료를 사기 위해 전 유럽 무역상들은 베네치아로 몰려들었습니다.

베네치아가 무역을 통해 큰 이윤을 남기자 다른 유럽 국가들은 새로운 경로로 인도에 갈 수 있는 바닷길 개척에 나섰습니다. 특히 탐험정신이 강했던 포르투갈의 왕자 엔히크는 선박을 제작해 탐험 항해가들을 아시아로 파견했고 마침내 1488년 바르톨로뮤 디아스 함대가 남아프리카의 희망봉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후 포르투갈 함대는 희망봉을 돌아 항해를 계속했고 인도양을 거쳐 인도의 캘리컷에 도착하게 됩니다.

 
이때 캘리컷의 지배자는 후추 열매를 금과 교환하길 원했지만, 포르투갈은 총과 군대로 무장해 캘리컷 지역을 정복해 후추 무역을 독점했습니다. 이를 시작으로 포르투갈은 여러 대륙을 돌며 아프리카와 인도, 인도네시아, 브라질까지 식민지화해 포르투갈 제국을 건설했습니다.

 

<출처 : latinamericanstudies.org>

 

포르투갈에 해상무역의 선수를 빼앗긴 스페인은 더 짧고 빠른 무역항로를 찾는 데 혈안이 됐습니다. 이때 이탈리아 출신의 탐험가이자 항해가인 콜럼버스는 인도의 동쪽 가장자리로 가는 짧은 항로를 개척하고자 스페인 국앙 페르난도 5세와 여왕 이사벨에게 인도와의 후추 교역을 약속하며 재정적 지원을 받았고, 총 4차례 유럽에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항해했습니다.

알다시피 콜럼버스가 인도라고 믿고 도착했던 곳은 아메리카 대륙이었지요. 하지만 콜럼버스는 그곳을 서인도제도라 불렀고, 원주민들을 인디언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향신료인 후추를 찾지 못하자 대신 매운맛을 내는 고추를 유럽으로 들여왔고 이후 고추는 포르투갈인들을 통해 아프리카, 인도까지 전파됐습니다.

 

<육두구 / 출처 : flickr>

 

포르투갈은 후추를 손에 넣으며 막대한 부와 식민지를 가진 나라로 발돋움했고 후추보다 값비싼 정향과 육두구에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정향과 육두구는 앞서 언급한 향료 제도, 즉 말라카에서 유래한 향료로 말라카 제도에 있는 테르나테 섬과 티도레 섬에서 유일하게 재배됐지요.

 

원래 정향과 육두구는 아랍과 말레이시아, 중국 상인들에 의해 아시아와 유럽으로 전파됐는데 12단계 이상의 유통경로를 거쳤기 때문에 가격이 매우 비쌌습니다. 이런 사실을 안 포르투갈의 인도 총독은 16세기 말라카 제도의 일부 섬을 점령해 동인도 향료 무역을 장악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인도네시아에 설립된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본부/ 출처 : flickr>

 

정향이 재배되는 테르나테 섬과 티도레 섬은 향료 무역을 독점할 수 있는 향료 제도의 핵심 지역이었습니다. 포르투갈은 이곳 추장들과 무역 협정을 맺었지만 원주민들이 원래 거래했던 말레이시아와 자바 인들에게 정향을 여전히 팔면서 독점이 쉽지 않았습니다.

17세기에는 뒤늦게 해상 무역에 뛰어든 네덜란드가 함대와 수백 명의 군인을 앞세워 포르투갈을 몰아내고 테르나테 섬과 티도레 섬을 완전히 식민지화했습니다. 이후 네덜란드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를 통해 향료 무역의 주역으로 부상했지요. 하지만 네덜란드의 향료 독점 무역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1770년 프랑스 외교관이 말라카 제도의 정향 묘목을 당시 프랑스 식민지였던 모리셔스로 밀반입했기 때문입니다. 정향은 모리셔스를 거쳐 아프리카 동해안을 따라 퍼져 나갔습니다.

 
정향과 달리 육두구는 원산지를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 재배하기 매우 어려운 식물이었지만 당시 영국이 이 육두구를 식민지였던 싱가포르와 서인도 제도로 몰래 가져와 재배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중세 말엽부터 근세까지 향료 무역은 세계 경제를 발전시켰습니다. 하지만 대항해시대와 항료 제도를 향한 야욕이 맞붙으면서 아시아와 아프리카는 수많은 침략과 식민 지배를 겪어야 했습니다. 향료가 금보다 귀했던 시대이기에 가능했던 무역전쟁이었지요. 하지만 향료를 손에 넣기 위해 혈안이 됐던 유럽 국가들이 많은 신대륙을 찾아냈고, 이것이 다양한 산업과 기술 발달에까지 영향을 끼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처럼 세계의 문화적, 상업적 교류가 빨리 이뤄질 수 있었던 것은 항료 제도라는 노다지를 목표로 미지의 세계를 개척한 역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출처 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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