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쟁많은 '임차인 원상회복의무' 범위는?
세입자의 원상회복범위 어디까지?
세입자 잘못으로 손상된 부분은 나갈 때 원상회복 (또는 원상복구) 의무가 있다. 그러나 정상적으로 사용하다가 생긴 흠이나 마모 다시 말해 ‘통상(通常)의 손모(損耗)’는 집주인이 부담해야 한다. 그런데 어디까지가 통상의 손모이고 어디부터가 세입자의 잘못인지 가려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이사 나가는 날 이 문제 때문에 집주인과 세입자가 다투는 경우가 많다.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누구의 부담인지 가려보자.
요즘 같은 불경기에는 상가의 원상복구 분쟁이 더 많아진다. 임차인은 나가야 하는데 들어올 사람이 아직 없는 상황. 이 때 임대인은 칸막이 등 부속물을 철거하여 건물의 신축 당시 상태를 요구하고 임차인은 내가 들어올 당시 상태로만 복구해 놓겠다고 한다. 누가 옳은 것일까? 원상복구를 안 했다고 임차보증금 반환을 지연시킬 수 있는가? 원상복구가 끝날 때까지 월세 부담은 또 어떻게 되는가?
임차인의 원상회복 범위는?
임대차계약서를 보면 “임대차계약이 종료되면 임차인은 이 부동산을 원상으로 회복하여 임대인에게 반환한다.”는 문구가 있다. 또한 민법에도 빌린 물건을 돌려줄 때는 “원상에 회복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민법제615조) 여기에서 ‘원상 회복’ 이란 입주 당시와 똑같은 상태로 회복하라는 것은 아니다. 남의 물건을 빌리면,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 의무가 있으며(민법 제374조), 또한 계약이나 그 물건의 성질에 따라 사용해야 한다.(민법 제610조) 따라서 이러한 임차인의 의무를 위반한 경우, 다시 말해 선량한 관리자의 의무를 잘 못했거나 비정상적으로 사용한 경우에만 원상회복의무가 발생하는 것이다.
민법 제615조
차주는 사용물을 반환하는 때에는 이를 원상에 회복하여야 한다.
민법 제374조
특정물의 인도가 채권의 목적인 때에는 채무자는 그 물건을 인도하기까지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 보존하여야 한다.
민법 제610조 제1항
차주는 계약 또는 그 목적물의 성질에 의하여 정하여진 용법으로 이를 사용, 수익하여야 한다. 통상의 손모는 임대인이 부담한다.
판례에서도 이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임차할 당시 상태보다 나빠지더라도 통상적인 방법으로 사용한 결과라면 임차인에게 원상회복 의무는 없으며, 이러한 통상의 손모에 관하여는 특약이 없는 한 임대인이 부담해야 한다.” 는 것이다. (서울중앙지법 2007.5.31. 선고 2005가합100279, 2006가합62053 판결)
이렇게 원상회복에 대한 원칙은 분명하지만 문제는 현실에서 적용이 어렵다는 데 있다. 아니 누가 그 원칙을 모른답니까?
한쪽에서는 임차인 잘못이라 하고 다른 쪽에서는 통상의 손모라고 우기면 어떻게 되느냐고요? 얼마 안 되는 돈 때문에 법원까지 갈 수도 없고... 통상의 손모인가? 세입자의 잘못인가?
사실 이 문제에 대하여 답을 주는 구체적 판례는 드물다. 원상회복을 위한 전체 공사비용 중에서 통상의 손모에 해당하는 부분을 가려내기 어려운 경우 임차인의 책임을 일단 50%로 판단한 사례도 있다. (위에서 인용한 서울중앙지법 판례). 이러한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한가지 방안으로서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간이 분쟁조정 센터를 이용할 수도 있다. (전월세 보증금 지원센터 02-2133-1200)
한편 일본 동경도(東京都)에서는 원상회복에 대한 분쟁 발생시 합의 권고안으로서 다음과 같이 구체적인 사례를 예시하고 있다. 우리와 주거문화가 비슷하므로 참고로 여기에 소개한다.
통상의 손모 (임대인 부담)
벽에 걸어놓았던 달력 또는 액자의 흔적
냉장고, TV 뒷면의 벽 검게 변색
벽의 못 자국 (도배를 바꾸어야 할 정도가 아니라면)
에어콘(임차인 소유) 설치로 인한 나사못 자국
카페트에 가구를 놓았던 자국
햇볕으로 인한 벽지 마루 등의 변색
임차인 잘못 또는 비정상적인 사용 (임차인 부담)
바퀴 달린 의자로 생긴 마루바닥의 흠, 자국
이삿짐 옮기면서 생긴 마루의 긁힘
벽의 못 자국 (도배를 바꾸어야 할 정도라면)
에어콘 누수를 방치하여 생긴 벽의 부식
결로를 방치하여 확대된 얼룩이나 곰팡이
애완동물 사육에 따른 기둥의 흠 등. (일본 東京都 ‘임대주택 트러블 방지 가이드라인’ 중에서 발췌)
임차인은 들어올 당시의 상태로만 복구하면 된다.
이번에는 상가의 경우를 보자. 다음 임차인을 구하지 못하고 점포를 비우고 나갈 때 원상회복 문제가 나오기 마련이다. 자주 발생하는 분쟁 사례 4가지를 순서대로 알아보자.
[사례 1] 이전 임차인이 설치한 시설물까지 철거 하라고요?
학원을 운영하는 L씨는 2년 만기가 끝나면 나가겠다고 통지하였다. 건물주는 칸막이와 마루바닥 등 시설물을 모두 철거하고 건물 신축 당시 상태로 해놓고 나가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시설들은 L씨가 들어올 때부터 이미 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임대인 얘기는 다르다. L씨가 권리금을 주고 들어왔기 때문에 나갈 때도 L씨에게 철거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이 사례에 적용되는 판례를 보자. 별도의 특약이 없다면 L씨는 전 임차인이 설치한 시설에 대한 원상회복 의무가 없다.
대법원 1990.10.30. 선고 90다카12035 판결
전 임차인이 무도유흥음식점으로 경영하던 점포를 임차인이 소유자로부터 임차하여 내부시설을 개조 단장하였다면 임차인에게 임대차 종료로 인하여 목적물을 원상회복하여 반환할 의무가 있다고 하여도 별도의 약정이 없는 한 그것은 임차인이 개조한 범위 내의 것으로서 임차인이 그가 임차 받았을 때의 상태로 반환하면 되는 것이지 그 이전의 사람이 시설한 것까지 원상회복할 의무가 있다고 할 수는 없다. 따라서 이런 분쟁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임차인이 들어올 때 주요 시설물의 상태를 사진으로 찍어 두는 것이 좋다. 후일 원상회복의 범위에 대한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원상회복 후 비용을 돌려받을 수 있는 경우는?
[사례 2] 그대로 두면 다음 사람이 잘 쓸 수 있는데
K씨는 운영하던 커피전문점을 닫기로 했다. 계약서에 시설물 원상복구비는 보증금에서 공제하기로 되어있다. 그런데 임대인이 제시한 철거공사 견적서를 보니 복구할 필요가 없는 부분까지 들어 있다. 4층 건물의 1~2층을 임차하면서 고객의 편의를 위해 1층과 2층 사이 내부계단을 설치했었다. K씨가 보기에 이 계단은 그대로 두면 다음 임차인이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시설물이다. 그러나 임대인은 1층 2층을 따로 임대할 수도 있으니 철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K씨는 내부계단 철거비도 부담해야 한다. 이 계단이 필요하다는 것을 임대인이 동의해주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본다. 그런데요, 나중에 보니 다음 임차인도 1~2층을 통으로 빌려 내부계단을 그대로 쓰고 있어요.
철거비를 돌려받아야죠? 당연히 임대인은 내부계단 철거비를 전 임차인 K씨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이 경우에 적용되는 판례가 있다. 대법원 2002. 12. 10. 선고 2002다52657 판결
임대차계약서에 임차인의 원상복구의무를 규정하고 원상복구비용을 임대차보증금에서 공제할 수 있는 것으로 약정하였다 하더라도 임대인이 원상복구할 의사 없이 임차인이 설치한 시설을 그대로 이용하여 타에 다시 임대하려 하는 경우에는 원상복구비용을 임대차보증금에서 공제할 수 없다고 보아야 한다.
사소한 원상회복을 안 했다고 보증금 반환을 거부할 수 있을까?
[사례 3] 전기 공사비 33만원 때문에
임차인P씨는 계약기간이 끝나자 집기를 들어내고 열쇠를 임대인에게 건네면서 보증금의 반환을 요구하였다. 그런데 임대인은 전기시설의 원상복구 공사를 해야 보증금을 돌려주겠다고 한다. 전기용량을 3KW 에서 10KW로 개조하면서 만기 시 원상회복하겠다는 약속을 지키라는 것이다. 그런데 30만원 정도에 불과한 전기 공사를 안 했다고 약 1억이 넘는 보증금 전액을 붙잡고 있겠다고? P 씨는 법으로 해보자고 맞섰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326,000원이 소요되는 전기시설의 원상회복을 안 했다고 해서 1억2500만원의 임차보증금 전액의 반환을 거부하는 것은 공평의 관념 또는 신의칙 위반으로서, 임대인은 보증금 전액에 대한 지연 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는 취지로 판결하였다. (대법원1999. 11. 12. 선고99다34697판결)
원상회복 지연에 따른 손해액 계산법은? 이번에는 임차인의 원상회복이 지연되어 임대인이 손해를 입은 경우를 살펴보자.
[사례 4] 복구공사가 실제로 끝난 날까지 월세를 내라고?
임차인 J씨는 불경기로 운영하던 사업체 문을 닫고 건물을 주인에게 명도하였다. 계약서에는 원상복구 의무가 임차인에게 있었지만 이를 이행하지 못했다. 결국 임대인이 나서서 철거와 복구 공사를 시키고 공사비용과 지연손해금을 J씨에게 청구해왔다. J씨가 볼 때 공사비는 그렇다 쳐도 지연손해금으로 50일분의 월세를 내라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물론 복구공사가 끝난 것은 J씨가 건물을 비운 후 50일이 맞다. 그러나 그 정도 공사에 필요한 기간은 5일이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 딱 들어맞는 판례를 소개한다. “임대인의 손해는, 임차인의 이행 지체일로부터 실제로 임대인이 원상회복을 완료한 날까지가 아니라, 임대인이 스스로 원상회복을 할 수 있었던 기간의 임대료 상당액이다.” (대법원 1999.12.21 선고 97다15104 판결) 또한 보다 구체적인 판례로서 “원상회복의 내용이 철거공사와 바닥 및 천정공사로서 길어도 5일을 넘지 않는다고 봄이 상당하므로 원상회복 불이행에 따른 손해배상으로서 5일간의 월세금액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한 사례가 있다. (서울중앙지법 2007.5.31 선고 2005가합100279, 2006가합62053 판결) 출처 이인덕.서울시청 임대차상담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