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가는 샘터

경북 문경새재 ‘길 위의 노래’

메이븐2 2014. 8. 1. 16:14

 

 

‘길’을 걷는다는 건 당신에게 무슨 의미인가요?

경북 문경새재 ‘길 위의 노래’

 

 

일상 속에서 알게 모르게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는 곳이 ‘길’이다. 지난 5일, 국립중앙도서관의 인기 프로그램인 ‘길 위의 인문학’이 ‘길’에서의 시간을 아름다운 노래로 승화시킨 신경림 시인과 함께 했다. 매번 다른 주제로 정신적 자양분을 제공하는 ‘길 위의 인문학’의 이번 탐방 장소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오랜 세월 동안 경상도와 중부 지방을 잇는 중요한 통로였던 문경새재였다. 신경림 시인의 시가 탄생되기도 한 이 길을 걸으며 길의 의미를 재탐색해보는 자리에 필자도 동행했다.

 
 
트래킹을 시작한 문경새재의 제3관문 조령관. 문경새재의 세 개의 관문은 한꺼번에
지어진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시간 차를 두고 지어졌다. 모두 숙종 때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건설됐는데 관문을 지은 뒤로는 왜적의 침입이 없었다고 한다.
 
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약 2시간을 달려 문경새재의 제3관문인 조령관에 도착했다. 제1관문에서 시작해 제3관문으로 향하는 일반적인 루트와는 반대로 시작했다. 제3관문에서 출발하는 길이 제1관문에서 오는 길보다 걷기에 편하다는 이유에서였다. 6.5km에 달하는 문경새재 길은 오랜 시간 교통의 요충지였던 만큼 길 곳곳에 그 흔적들이 깃들어져 있었다.

문경새재는 경상도와 서울을 이어주는 고갯길이다. ‘새재’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유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고개가 높아서 새도 넘기 힘들다고 해서 붙여졌다는 설, 산에 억새가 많은데 경상도 말로 ‘쌔’가 많은 고개라고 해서 새재로 불렸다는 설, 그리고 옛 길인 계립령과 죽령 사이에 있는 길이라고 해서 새재라는 설 등이 있다. 교통의 요충지이기에 숙박시설도 상당수 있었고, 조선시대에는 과거를 보러 갈 때 가장 많이 이용된 길이라서 ‘과거길’이라고도 불렸다.
 
새재길을 오르기에 앞서 마음으로 길을 느껴보라는 신경림 시인. 교과서에서만 만나던 시인을 직접 만나니 감회가 새로웠다.
새재길을 오르기에 앞서 마음으로 길을 느껴보라고 말하는 신경림 시인. 교과서로만 만나던 시인을 직접 만나니 감회가 새로웠다.

 

길을 따라 인문학의 정취를 본격적으로 느껴보기 전, 동행한 신경림 시인은 “너무 학문적으로나 정면적으로 이 길을 바라보지 말고 그저 즐겁게 즐기라.”며 “즐기다 보면 어느새 문학이 보일 겁니다.”라고 조언했다. 취재를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전투적인 자세를 갖추고 있던 필자도 신경림 시인의 말을 듣고 자세를 바꿔 길에서 느끼는 인문학의 정취를 제대로 느껴보기 위해 크게 긴장을 풀고 즐거운 마음으로 길고 험한 문경새재에 첫발을 내디뎠다.

‘길’은 문학에서 인생이나 민족의 역사 등을 의미하는 소재로 자주 사용된다. 길을 걷다보면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도 가질 수 있다. 참으로 일상적이면서도 문학적인 공간이다. 그래서인지 국내 길의 대표선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문경새재길엔 새재를 노래한 시들과 지나가던 객이 남기고간 시가 남아있었다. 수학여행 단골코스라고만 머릿 속에 자리잡고 있던 이 길이 자연과 역사와 시가 공존하는 낭만적인 공간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새재를 걷다보면 곳곳에서 여러 시인들이 이 길을 노래한 시를 발견할 수 있다. 시들을 보며 계속 걷다보니 스스로도 시 한 수를 짓고 싶은 욕구가 솟아났다.
새재를 걷다보면 곳곳에서 여러 시인들이 노래한 이 길과 관련된 시를 발견할 수 있다. 시들을 읽으며 계속 걷다보니 스스로도 시 한 수를 짓고 싶은 욕구가 솟아났다.

 

새재는 오랜 시간 교통의 요충지였던 만큼 시련도 있었는데, 특히 일본과 악연이 많았다. 임진왜란 때 험준한 새재에서 왜군을 막아야 한다는 부장의 의견을 무시하고 충주에 배수진을 친 신립 장군은 큰 패배를 하게된다. 새재를 넘어온 일본군 장수는 이곳을 조선군이 막았다면 우리는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한일 병합 직전 문경 남부 지역은 일본에 대항하는 의병들이 많았다. 일본군과 일본의 강제 명령에 끌려나온 관군은 의병 토벌을 위해 새재의 관문을 불태우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길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소나무는 ‘V’자 모양으로 깊게 패여 있는 것이 많았다. 이는 태평양전쟁이 치열해지고 군수물자가 부족해지자 일제가 당시 식민지였던 우리나라에서 송진을 구하기 위해 산에 있는 소나무에 상처를 낸 것이다. 이미 반백 년이 지난 일이지만 여전히 그 아픈 기억은 길 위에 남아있었다.

새재에서의 여정이 끝이 난 후 신경림 시인의 고향인 충주 노은으로 향했다. 충주에서 도착한 곳은 신경림 시인의 모교인 노은초등학교였다. 아담한 크기의 시골학교에는 신경림 시인의 대표작인 ‘농무’가 새겨진 시비가 세워져 있었다. ‘우리 시대의 두보(杜甫)’라 불리는 시인을 배출한 학교라는 자부심이 느껴졌다.

 

신경림 시인의 모교에 세워진 대표작
신경림 시인의 모교에 세워진 시비. 그의 대표작인 ‘농무’가 새겨져 있다. 주민들이 십시일반 힘을 모아 세웠다는 이 시비는 고향을 사랑한 신경림 시인과 그런 신경림 시인의 시를 사랑하는 고향민들의 마음이 담겨있다.

 

신경림 시인은 1935년 충북 충주에서 출생해 1956년에 작품 활동을 시작한 원로 문인이다. 그는 시대를 외면하지 않고 민초들과 더불어 저잣거리에 섞여 살며 하찮은 존재들의 슬픔과 한, 민초들의 굴곡진 삶의 풍경과 애환을 친근한 생활 언어로 노래했다. ‘민중적 서정시인’으로 자리매김한 그는 어린 나이의 필자에게는 ‘교과서에 나오고 수능시험에 나오기에 작품을 외우다시피 한 작가’였다. 교과서와 입시라는 것이 주는 무게감 때문일까. 처음 만난 신경림 시인은 반가우면서도 왠지 모를 거리감과 어려움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런 느낌도 잠시. 노은초등학교 강당에서 이뤄진 시인과의 대화 시간을 통해 그런 생각들은 완전히 깨지게 됐다. 신경림 시인은 “제가 시를 쓰는 건 사람들을 가르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럴 만한 능력이 있지도 않고, 시의 목적 자체가 사람들을 깨우치는 데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시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사람들과 같이 어울리는 존재인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시를 어렵고 무겁게 생각하지 말고 이날의 여정을 처음 시작할 때 얘기한 것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느끼라는 것. 그의 시세계를 직접 듣고 나니 신경림 시인은 물론 시라는 문학 자체가 한층 더 가깝게 다가왔다.

신경림 시인은 이날의 주제인 ‘길’에 대해 이야기로 강의를 풀어나갔다. 길, 특히 신경림 시인이 성장한 충북 노은과 자주 왕래한 문경새재는 그의 문학에 많은 자양분이 됐다. 그가 1998년에 발표한 ‘길 이야기’에는 ‘내게는 길만이 길이 아니고 내가 만난 모든 사람이 길이었다. 나는 그 길을 통해 바깥세상을 내다볼 수 있었고 또 바깥세상으로도 나왔다.’라는 구절이 있다. 길에서 일어난 일, 만난 사람들 모두가 스승이었다는 말대로 그들의 이야기를 시에 담게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청주과학대학의 노창선 교수는 신경림 시인의 작품 창작의 배경이 된 공간들을 연구하며 작품세계를 설명하기도 했다.

 

신경림 시인의 생가 전경. 탁 트인 전경을 바라보고 시골마을의 마을 골목길을 곳곳으 누볐을 어린 신경림 시인의 모습을 떠올려보았다.
신경림 시인의 생가 전경. 탁 트인 전경을 바라보며 시골마을의 마을 골목길 곳곳을 누볐을 어린 신경림 시인의 모습을 떠올려보았다.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목계나루. 일상적인 길을 예술로 승화시킨 그의 감각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길은 특별한 상황 속에서는 큰 의미를 부여하게 되지만 일상 속에서는 너무나 평범한 공간이기에 별다른 생각 없이 지나치게 되는 곳이다. 출퇴근길에 피곤에 지쳐있는 직장인, 책이 가득 든 가방을 메고 달려가는 학생 등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지만 그 길 위에서 삶에 대한 충족감과 만족감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잠시라도 손에 들고 있던 문서들, 귀에 꼽고 있던 이어폰을 뽑고, 걷고 있는 길을 느끼며 생각에 잠기는 나만의 시간을 가져보자. 우리 시대의 두보는 특별하게 탄생되지 않았다. 당신이 걷고 있는 길 위에서 세상을 읽고 행복을 느껴보았느냐의 차이이다. 일상적 공간을 특별하게 느끼기 시작할 때, 당신의 삶이 풍족해져있음을 저절로 느끼게 될 것이다.

 

길고 험준한 새재 길 트래킹을 마친 탐방단의 모습. 처음 길에 오를 때와는 달리 육체는 지친 모습이지만 정신은 더더욱 풍성해졌을 것이다.
길고 험준한 새재길 트래킹을 마친 탐방단의 모습. 처음 길에 오를 때와는 달리 육체적으로는 지친 모습이었지만 정신적으로는 더욱 풍성해진 모습이었다.

 

‘길 위의 인문학’은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삶 속에서 소외돼가고 있는 인문학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고, 일상생활 속에서 정신적인 자양분을 공급하기 위해 국립중앙도서관이 진행 중인 프로그램이다. 탐방 외에 강연이나 전시 등도 진행한다. 구체적인 일정 확인 및 참여 신청은 국립중앙도서관 홈페이지(http://www.nl.go.kr/tour)에서 가능하다. 출처 정책브리핑